서론: 깨어진 이스라엘의 불패 신화

1967년 '6일 전쟁'의 압도적인 승리 이후, 이스라엘은 극도의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강력한 정보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아랍 군대는 향후 몇 십 년간 감히 우리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복수를 칼날을 갈아온 아랍 세계의 의지를 간과한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1973년 10월, 유대교 최고의 성일(聖日)에 터진 '욤 킵루르 전쟁(Yom Kippur War)' 혹은 '제4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을 건국 이래 최대의 멸망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또한 이 전쟁은 '석유의 무기화'를 통해 전 세계 경제를 마비시킨 오일쇼크의 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의 운명을 뒤흔든 제4차 중동전쟁의 전말을 살펴보겠습니다.

1. 허를 찔린 기습: 유대인들의 가장 성스러운 날에 터진 포성

1970년 이집트의 영웅 나세르가 사망한 뒤,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사다트는 무모한 전면전 대신,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시나이 반도를 되찾고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치밀한 기습 작전을 준비했습니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는 이스라엘을 동서 양쪽에서 동시에 기습 공격했습니다. 이날은 유대인들이 일 년 중 가장 경건하게 기도하며 단식하는 명절인 '욤 킵루르(속죄일)'였습니다.

  • 전쟁 초기의 참패: 명절을 맞아 군인들이 대거 휴가를 떠나고 방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이집트군은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스라엘의 난공불락 방어선이었던 '바레브 라인'을 단숨에 돌파했습니다. 북쪽에서는 시리아군이 골란고원으로 무섭게 진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 불과 며칠 만에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며 패전 직전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2. 슈퍼파워의 공중 보급과 이스라엘의 대반격

벼랑 끝에 몰린 이스라엘을 구한 것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었습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중동이 소련의 후원을 받는 아랍국가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에 막대한 양의 최신 무기를 항공기로 직접 실어 나르는 '니켈 그라스 작전(Operation Nickel Grass)'을 감행했습니다.

미국의 전폭적인 무기 지원과 천재적인 군사 전략가 아리엘 샤론 장군의 활약으로 전열을 정비한 이스라엘군은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수에즈 운하를 역으로 건너가 이집트 본토를 위협했고,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근처까지 진격했습니다. 결국 미국과 소련의 중재로 10월 하순에 종전이 선언되었지만, 양측 모두 엄청난 피해를 본 상처뿐인 전쟁이었습니다.

3. 세계 경제를 마비시킨 아랍의 무기: 제1차 오일쇼크

이번 전쟁이 과거의 중동전쟁과 가장 달랐던 점은, 아랍 국가들이 총칼 대신 '석유(Oil)'라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무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전쟁 중이던 10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석유수출국기구(OAPEC)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을 압박하기 위해 석유 생산량을 감축하고 감산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제1차 오일쇼크(Oil Shock): 불과 몇 달 만에 국제 유가는 배럴당 3달러 선에서 12달러 이상으로 4배 폭등했습니다. 전 세계는 전례 없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고, 자동차 운행 제한, 주유소 배급제 등이 시행되며 일상생활이 마비되었습니다. 한국 역시 이때 극심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결론: 평화의 서막과 팔레스타인의 소외

욤 킵루르 전쟁은 현대 중동사에 기묘한 반전을 가져왔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간신히 방어에 성공했지만, 아랍 세계는 "우리도 이스라엘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특히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전쟁을 통해 얻은 외교적 레버리지를 활용해 미국의 중재 하에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1978년, 미국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역사적인 평화 협정(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맺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주었고, 이집트는 아랍국가 중 최초로 이스라엘을 합법 국가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평화의 서막' 이면에는 차가운 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집트가 자국의 이익(시나이 반도 회복)을 위해 이스라엘과 손을 잡으면서, 아랍 동맹의 결속력은 와해되었습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하에 고통받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독립 문제는 철저히 소외되고 말았습니다.

강대국들과 주변 아랍국들의 외교전 속에서 자신들의 운명이 지워지는 것을 본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제 거대한 민중 항쟁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게 됩니다. 다음 10편에서는 팔레스타인의 독자적인 저항을 이끈 야세르 아라파트와, 돌멩이로 전차에 맞선 민중항쟁 '제1차 인티파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