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현대 중동 분쟁의 결정적 분기점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핵심 쟁점인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 그리고 '동예루살렘'의 귀속 문제는 모두 1967년에 일어난 한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바로 '6일 전쟁(Six-Day War)'이라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입니다.

단 6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스라엘이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 아랍 동맹국을 상대로 거둔 압도적인 승리는 중동의 정치적, 지리적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이 전쟁의 전말과, 이것이 팔레스타인 역사에 남긴 거대한 그림자를 살펴보겠습니다.

1. 전운이 감도는 중동: 전쟁의 도화선

1960년대 중반, 중동의 긴장감은 다시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범아랍주의의 기치를 다시 올리며 이스라엘을 압박했습니다.

1967년 5월, 나세르는 가자지구와 시나이 반도에 주둔해 있던 UN 긴급군(UNEF)의 철수를 요구했고, 이스라엘의 남쪽 해로인 티란 해협을 다시 봉쇄했습니다. 요르단과 시리아 역시 이집트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며 이스라엘을 사방에서 포위했습니다. 아랍 세계의 언론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며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사방이 가로막힌 고립 상태에서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한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됩니다.

2. 작전명 포커스(Focus): 단 하루 만에 결정된 승패

1967년 6월 5일 아침, 이스라엘은 예상을 뒤엎고 '선제공격'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바다 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아주 낮은 고도로 비행한 뒤, 이집트의 주요 공군기지들을 기습 폭격했습니다. 이 작전이 바로 ‘포커스 작전(Operation Focus)’입니다.

1.1일 차: 아랍 공군의 괴멸 (6월 5일):공중 우세권 확보.

이스라엘은 기습 공격을 통해 이집트 공군 전투기의 90% 이상을 이륙하기도 전에 지상에서 파괴했습니다. 이어 요르단과 시리아의 공군력까지 무력화하며 전쟁 시작 단 몇 시간 만에 중동의 하늘을 완벽하게 장악했습니다.

2.2~4일 차: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 서안지구 점령 (6월 6일~8일):남부 및 동부 전선 돌파.

하늘의 엄호를 받은 이스라엘 지상군은 무서운 속도로 진격했습니다. 이집트 군을 밀어내며 시나이 반도 전체와 가자지구를 수중 넣었고, 요르단 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요르단강 서안지구 전체를 장악했습니다.

3.5~6일 차: 골란고원 점령과 종전 (6월 9일~10일):북부 전선 종결 및 휴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은 북쪽 전선으로 눈을 돌려 시리아의 천연 요새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고원을 가파른 전투 끝에 함락시켰습니다. 아랍 연합군이 완전히 궤멸하자 6월 10일, UN의 중재로 공식 휴정이 발효되었습니다.

3. 중동 지도의 대변혁: 점령된 영토와 통곡의 벽

6일 전쟁의 결과로 이스라엘은 원래 영토의 약 3.5배에 달하는 면적을 새로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지도 위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이 빼앗은 영토기존 지배국팔레스타인 역사적 의미
가자지구 (Gaza Strip)이집트팔레스타인 난민 밀집 지역
요르단강 서안지구 (West Bank)요르단팔레스타인 인구의 핵심 거주지
동예루살렘 (East Jerusalem)요르단유대교·이슬람교 최전방 성지
시나이 반도 (Sinai Peninsula)이집트방대한 사막 지대 (이후 이집트에 반환)
골란 고원 (Golan Heights)시리아이스라엘 북부 안보의 핵심 수자원 지대

특히 유대인들에게 가장 감격적인 순간은 요르단이 지배하던 동예루살렘과 통곡의 벽을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2,000년 만에 자신들의 가장 성스러운 기도처를 다시 손에 넣은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즉시 예루살렘의 전면 통합을 선언했습니다.

결론: 끝없는 갈등의 서막, 점령지(Occupied Territories)의 탄생

6일 전쟁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찬란한 군사적 기적이었지만, 동시에 현대 중동 갈등이 결코 풀릴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살던 10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하루아침에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자국 영토로 공식 합병하지도 않으면서(인구 비례상 유대인이 소수가 될 것을 우려),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 국가 건설을 철저히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서안지구 땅에 유대인들을 이주시키는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고착화됩니다.

나아가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수십만 명 더 발생했습니다. 이제 팔레스타인인들은 주변 아랍 형제국들이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저항해야 함을 자각했고, 이는 훗날 본격적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게릴라 투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다음 9편에서는 아랍 세계가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던 '욤 킵루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과 최초의 오일쇼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