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팔레스타인을 넘어 세계 대전의 위기로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이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후, 중동 땅에는 아슬아슬한 휴전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평화가 아닌, 다음 폭발을 기다리는 화약고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에 패배한 아랍 세계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이집트의 새로운 영웅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가 있었습니다.
1956년에 터진 '수에즈 위기(Suez Crisis)' 혹은 '제2차 중동전쟁'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아랍의 싸움을 넘어, 대영제국의 몰락, 미국의 개입, 그리고 구소련의 핵 위협까지 뒤얽힌 거대한 국제 정치의 장이었습니다. 이 전쟁이 왜 일어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나세르의 등장과 수에즈 운하 국유화 폭탄
1952년 쿠데타로 이집트의 권력을 잡은 나세르 대통령은 강력한 '범아랍주의(아랍 민족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사상)'를 내걸었습니다. 그는 1차 중동전쟁의 패배를 설욕하고 이집트를 아랍의 맹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나세르의 거침없는 행보는 서방 세계를 긴장시켰습니다. 그는 미국이 이집트 아스완 댐 건설 자금 지원을 거절하자, 1956년 7월 26일 전 세계를 뒤흔든 폭탄 선언을 감행합니다. 바로 영국과 프랑스가 지분을 나누어 갖고 있던 국제 무역의 핵심 통로, '수에즈 운하(Suez Canal)'의 국유화를 선언한 것입니다.
수에즈 운하의 중요성: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는 유럽으로 가는 석유 수송의 생명선이었습니다. 이곳이 이집트 손에 넘어가자, 영국과 프랑스는 엄청난 경제적·정치적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이와 동시에 나세르는 이스라엘의 목줄을 죄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선박의 수에즈 운하 통과를 전면 금지하고, 아카바만(티란 해협)을 봉쇄하여 이스라엘의 남부 항구도시 에일라트를 고립시켰습니다. 또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 대원(페다인)들을 지원해 이스라엘 국경을 지속적으로 습격하게 했습니다.
2. 세 나라의 비밀 동맹과 전격 침공
이집트라는 공동의 적을 맞이한 세 나라 —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프랑스 세브르에서 비밀리에 만나 나세르를 축출하기 위한 모의를 합니다. 이들의 작전은 매우 교묘했습니다.
단계 1: 이스라엘이 먼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전격 침공한다.
단계 2: 영국과 프랑스가 "운하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명분으로 중재자를 자처하며 개입한다.
단계 3: 이집트가 거부하면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군사적으로 운하를 점령한다.
1956년 10월 29일, 계획대로 이스라엘군이 시나이 반도를 침공하며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무서운 속도로 시나이 반도를 장악하고 가자지구를 점령했습니다. 뒤이어 영국과 프랑스 공수부대가 수에즈 운하 지대에 공습을 감행하고 상륙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세 동맹국의 완벽한 승리처럼 보였습니다.
3. 슈퍼파워의 분노: 뒤바뀐 전쟁의 결말
하지만 이들의 제국주의적 군사 행동은 예상치 못한 거대한 암초를 만났습니다. 당시 세계를 움직이던 두 슈퍼파워, 미국과 소련이 동시에 분노한 것입니다.
소련의 위협: 소련은 아랍 세계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이집트를 옹호하며 "영국과 프랑스 본토에 핵미사일을 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미국의 배신감: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격노했습니다. 미국은 영국에 막대한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협박하며 즉각적인 철수를 압박했습니다.
결국 미국과 소련의 강력한 압박에 굴복한 영국과 프랑스는 비참하게 군대를 철수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점령했던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에서 군대를 물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론: 전쟁이 남긴 중동의 새로운 판도
제2차 중동전쟁은 군사적 결과와 정치적 결과가 완전히 엇갈린 기묘한 전쟁이었습니다.
이집트와 나세르: 군사적으로는 참패했으나, 강대국들의 침략에 맞서 수에즈 운하를 끝내 지켜냈다는 점에서 아랍 세계의 불멸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전 세계에 자신들이 더 이상 초강대국이 아니며, 미국의 허락 없이는 전쟁도 할 수 없는 '과거의 제국'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비록 땅은 돌려주었지만, 아카바만의 항행권을 다시 확보했고 가자지구 국경에 UN 긴급군(UNEF)이 배치되면서 한동안 팔레스타인 게릴라의 습격에서 벗어나는 안보적 실리를 챙겼습니다.
이 전쟁을 계기로 중동 지역은 본격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 대리전장'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라는 든든한 상대를, 아랍국가들은 소련이라는 강력한 후원자를 등에 업고 더 거대한 무장을 시작하게 됩니다.
평화는 잠시뿐이었습니다. 이 안보적 균형이 깨지는 11년 뒤, 중동의 지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현대사 최대의 격돌이 찾아옵니다. 다음 8편에서는 단 6일 만에 중동의 운명을 가른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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