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주체적인 저항의 시작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단독 평화협정을 맺으며 아랍 연합전선은 사실상 와해되었습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주변 아랍 형제국들이 더 이상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 없다는 차가운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은 20년째 이어졌고, 유대인 정착촌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삶의 터전은 날로 좁아졌습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더 이상 외세에 운명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 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성장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거대한 민중항쟁 '제1차 인티파다'의 전말을 살펴보겠습니다.

1. 야세르 아라파트와 PLO의 국제무대 등장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는 원래 1964년 아랍연맹의 주도로 만들어진 단체였습니다. 초기에는 주변 아랍국들의 정치적 도구에 불과했으나, 1969년 게릴라 조직 '파타(Fatah)'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가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라파트의 지휘 아래 PLO는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유일무이한 중심축으로 성장했습니다.

PLO는 이스라엘을 타도하고 팔레스타인 땅을 되찾기 위해 요르단과 레바논 등 주변국을 거점으로 치열한 게릴라전과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 등 극단적인 유혈 사태를 일으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라파트는 무장 투쟁과 더불어 외교적 노력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1974년, 그는 군복을 입고 권총 벨트를 찬 채 UN 총회 연단에 올라 역사적인 연설을 남겼습니다.

"나는 한 손에는 올리브 가지(평화)를, 다른 한 손에는 자유 전사의 총을 들고 왔습니다. 내 손에서 올리브 가지가 떨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 연설을 계기로 PLO는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 민족을 대변하는 유일한 정통성 있는 기구로 공식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2. 제1차 인티파다(1987년): 폭발한 분노와 돌멩이 혁명

PLO가 해외를 떠돌며 외교전과 게릴라전을 벌이는 동안, 이스라엘 점령지 내부의 압박은 임계점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87년 12월 8일,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한 교통사고가 거대한 폭발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용 트럭이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탄 차량을 들이받아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 사고를 이스라엘의 의도적인 살인 행위로 받아들였고, 그동안 쌓였던 분노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1차 인티파다(Intifada)'의 시작이었습니다.

  • 인티파다의 의미: 아랍어로 '떨쳐 일어남', '봉기'를 뜻합니다.

  • 돌멩이 대 전차: 이 저항은 과거의 전쟁처럼 정규군이나 조직된 게릴라가 주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학생,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통행금지에 항거하고 파업을 벌였습니다. 특히 완전무장한 이스라엘 군 전차와 소총을 향해 팔레스타인 소년들이 맨손으로 돌멩이와 새총을 던지며 맞서는 모습은 전 세계 언론에 생생히 보도되었습니다.

3. 국제 여론의 변화와 '2국가 해법'의 대두

이스라엘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인티파다를 가혹하게 진압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이 돌을 던지는 아이들의 뼈를 부러뜨리거나 최루탄과 실탄을 난사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국제 여론은 급격히 뒤집혔습니다.

과거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이자 아랍 세계에 둘러싸인 약자'로 인식되던 이스라엘은 하루아침에 '맨손의 민간인을 탄압하는 무자비한 점령군'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미국조차 이스라엘의 과도한 무력 진압을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인티파다의 거센 에너지는 PLO에게도 거대한 정치적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아라파트는 민중들의 처절한 희망을 담아 1988년 11월, 알제리에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선언함과 동시에 중요한 외교적 결단을 내립니다.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던 기존의 강경 노선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며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 국제사회의 공식 의제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론: 평화의 문을 열어젖힌 돌멩이들

제1차 인티파다는 총칼이 아닌 평범한 민중들의 온몸을 던진 저항이 강대국의 정치를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소년들의 돌멩이는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도 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무력만으로는 이 점령지를 영원히 통제할 수 없다"는 자각이 이스라엘 내부 지식인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이 거대한 민중항쟁의 에너지는 굳게 닫혀 있던 평화의 문을 열어젖히게 됩니다. 다음 11편에서는 마침내 이스라엘 총리와 PLO 의장이 역사적인 악수를 나누며 평화의 기적을 꿈꿨던 '1993년 오슬로 협정'과 그 눈물겨운 한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