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갈등의 불씨를 지핀 영국의 모순된 외교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20세기 초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입니다. 많은 역사학자는 현재의 중동 분쟁이 이 시기 영국의 '이기적이고 기만적인 외교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합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당시,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정된 영토를 두고 아랍인과 유대인 양측 모두에게 달콤한 약속을 건넸습니다. 하나의 땅을 두고 두 민족에게 각각 독립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비밀 약속을 한 것입니다. 이른바 '영국의 이중 계약'이라 불리는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중동의 운명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맥마흔 선언(1915년): 아랍인의 대리전을 이끌어내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수백 년 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은 영국의 적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편에 서서 참전했습니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내부에서 흔들기 위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불만이 가득했던 아랍 민족에게 접근했습니다.

1915년,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이었던 헨리 맥마흔(Henry McMahon)은 아랍의 유력 지도자였던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Hussein bin Ali)와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를 '맥마흔-후세인 서한(McMahon-Hussein Correspondence)'이라고 부릅니다.

  • 영국의 약속: 아랍인이 오스만 제국에 맞서 반란을 일으켜 영국의 전쟁을 도우면, 전쟁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지역에 '독립적인 아랍 거대 국가'를 세우도록 승인하고 지원하겠다.

이 약속을 믿은 아랍인들은 영국의 군사 고문이었던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함께 목숨을 걸고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싸웠고, 결국 영국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2. 벨푸어 선언(1917년): 유대인의 자본과 지지를 유혹하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영국의 재정은 바닥나기 시작했고, 전쟁의 향방도 불투명해졌습니다. 당황한 영국은 이번에는 전 세계의 경제와 여론을 움직이던 유대인 사회로 눈을 돌렸습니다. 미국 내 유대인들의 영향력을 이용해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고, 유대인 자본가들의 막대한 전쟁 자금을 조달받기 위함이었습니다.

1917년 11월, 영국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Arthur Balfour)는 유대인 사회의 대표적인 금융가였던 로스차일드 남작에게 공식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분쟁의 핵심이 된 '벨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입니다.

  • 영국의 약속: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적 고향(National Home)'을 건설하는 것을 적극 지지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불과 2년 전 아랍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했던 바로 그 땅에, 이제는 유대인들의 나라를 세워주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3. 사익스-피코 협정(1916년): 등 뒤에서 맺은 진짜 비밀 조약

영국의 기만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각각 땅을 약속하는 사이, 영국은 또 다른 강대국인 프랑스, 러시아와 함께 중동 땅을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질 비밀 협정을 맺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1916년 체결된 '사익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입니다.

이 비밀 협정에 따르면,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후 중동 지역은 프랑스가 시리아와 레바논을 차지하고, 영국이 이라크와 요르단을 차지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팔레스타인 지역은 국제 공동 관리 구역으로 둔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결국 영국은 아랍인에게 한 약속도, 유대인에게 한 약속도 진심으로 지킬 생각이 없었으며, 오직 자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해 중동 땅에 자를 대고 국경선을 그으려 했던 것입니다.

결론: 배신당한 두 민족, 폭발하는 갈등의 서막

1차 세계대전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오스만 제국은 완전히 붕괴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의 이중, 삼중 비밀 외교의 실체가 드러나자 중동 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 아랍인들은 피를 흘려 함께 싸웠음에도 독립 국가 대신 영국의 식민 지배(위임통치)를 받게 되었고, 자신들의 땅에 유대인들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며 영국과 유대인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 유대인들은 벨푸어 선언을 국제법적인 약속으로 신뢰하고,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팔레스타인으로 더욱 거세게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이 전쟁 승리라는 단기적 이익을 위해 던진 모순된 약속들은, 하나의 땅을 두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두 민족의 전면전을 야기했습니다. 다음 4편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이 실제로 팔레스타인을 통치했던 '영국 위임통치령 시대'에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발생한 피비린내 사는 초기 유혈 충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