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일방적 철수 뒤에 숨은 거대한 고립
2005년,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는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38년 동안 군사 점령하고 있던 가자지구(Gaza Strip)에서 모든 유대인 정착민(약 9,000명)을 이주시키고 군대를 완전히 철수하겠다는 '일방적 철수 계획'을 실행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마침내 가자지구 땅에 자유가 찾아왔다며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이 철수는 평화를 위한 양보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부의 직접 점령 대신, 외곽을 완전히 통제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꾼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터진 팔레스타인 내부의 정권 교체와 이로 인한 이스라엘의 전면 봉쇄는 가자지구를 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지옥으로 가두는 서막이 되었습니다.
1. 하마스의 부상과 팔레스타인의 내전 (2006~2007)
이스라엘 군이 물러간 뒤인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전역에서 총선거가 치러졌습니다. 국제사회는 온건파이자 서방의 지원을 받던 기존 집권당 '파타(Fatah)'의 승리를 예상했으나,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슬람 무장 저항 조직인 하마스(Hamas)가 전체 132석 중 74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평화협정을 지지하던 파타당이 왜 참패하고 강경파인 하마스가 선택받았을까요? 배경은 명확했습니다.
파타당의 부패와 무능: 오슬로 협정 이후 수립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만성적인 부패와 무능에 시달렸고,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을 막지 못해 민중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하마스의 복지 인프라 구축: 반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 투쟁을 벌이는 동시에, 자치정부가 방치한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학교, 병원,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밑바닥 민심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의 집권을 미국과 서방, 그리고 이스라엘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2007년, 온건파 파타당과 강경파 하마스 간의 유혈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이 충돌의 결과로 팔레스타인은 둘로 쪼개지게 됩니다. 파타당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독점 지배하는 ‘1민족 2정부’의 비극적인 분단이 시작된 것입니다.
2. '창살 없는 감옥'의 시작: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 봉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완벽히 장악하자, 이스라엘 정부는 즉각 가자지구를 '적대 지역'으로 선포하고 육상·해상·공중을 완전히 차단하는 종합적 군사 봉쇄(Blockade)를 단행했습니다.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댄 이집트 역시 안보와 자국 내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에 동조했습니다.
이 봉쇄로 인해 남북 길이 41km, 폭 6~12km의 좁은 해안 지대에 갇힌 20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삶은 붕괴했습니다.
물류와 통행의 차단: 이스라엘의 허가 없이는 콘크리트, 철근 같은 건축 자재는 물론 의약품, 식료품조차 제대로 반입되지 못했습니다. 주민들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어 외국의 대학에 합격한 학생이나 중환자들조차 국경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생존 인프라의 마비: 가자지구의 전력과 식수는 이스라엘의 공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전력 공급을 제한하면서 가자지구 주민들은 하루에 고작 4~5시간만 전기를 쓸 수 있는 극한의 환경에 처했고, 식수의 90% 이상이 오염되어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국제연합(UN)과 인권 단체들은 가자지구의 이러한 처지를 두고 '지붕만 없을 뿐, 세계에서 가장 큰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부르며 인도주의적 재앙을 경고했습니다.
3. 땅굴 경제와 피의 악순환
외부 세계와 완벽히 단절된 하마스와 가자지구 주민들이 찾아낸 생존책은 땅 밑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집트 국경 지하로 수백, 수천 개의 비밀 밀수 땅굴(Tunnel)을 뚫었습니다.
이 땅굴을 통해 생필품, 가축, 자동차 부품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항할 무기와 로켓 부품이 가자지구 내부로 유입되었습니다. 하마스는 이 땅굴 경제에 세금을 매겨 조직의 재정을 확보하고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봉쇄가 지속될수록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사제 로켓포를 발사했고, 이스라엘은 최첨단 전투기와 드론을 동원해 대규모 폭격을 가하는 악순환이 수년 주기로 반복되었습니다. 2008년 '캐스트 리드 작전', 2012년 '방어 기둥 작전', 2014년 '보호 조치 작전' 등 주기적으로 터진 전면전으로 매번 수천 명의 가자지구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론: 현대 중동 분쟁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가자지구 봉쇄는 하마스를 고립시켜 무력화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역설적으로 봉쇄가 강해질수록 가자지구 주민들은 하마스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악순환에 빠져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실업률은 60%를 넘어섰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자지구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자란 세대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절망과 증오의 토양은 훗날 전 세계를 다시 한번 거대한 충격에 빠뜨릴 더 큰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다음 14편에서는 오랜 봉쇄 끝에 터져 나온 비극,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발발과 해결되지 않는 중동의 미래'에 대해 다루며 본 시리즈를 마무리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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