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깨어진 희망이 불러온 대폭발

1990년대의 오슬로 협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거대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캠프 데이비드 회담이 최종 결렬되면서 그 희망은 뼈아픈 배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대화와 외교로는 자신들의 독립 국가를 세울 수 없고, 이스라엘의 점령 체제와 유대인 정착촌 확장만 고착화될 뿐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가뜩이나 일촉즉발이던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한 이스라엘 정치인의 도발이었습니다. 2000년 9월, 이스라엘의 강경파 우익 정치인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이 무장 경호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를 전격 방문한 것입니다. 이를 자신들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받아들인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중동 현대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비극인 '제2차 인티파다(알 아크사 인티파다)'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1. 눈물과 피로 물든 제2차 인티파다 (2000~2005)

1987년에 일어났던 제1차 인티파다가 돌멩이와 새총, 그리고 민중 파업 중심의 비폭력 저항에 가까웠다면, 제2차 인티파다는 차원이 다른 유혈 무장 투쟁이었습니다.

  • 하마스와 무장 투쟁의 부상: 오슬로 협정을 주도했던 온건파 자치정부(PA)의 영향력은 급격히 추락했고, "무력만이 답"이라고 주장하던 이슬람 저항 단체 하마스(Hamas)와 무장 세력들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내부의 버스, 식당, 쇼핑몰 등 민간인 밀집 지역을 겨냥해 무차별적인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군사 보복: 이스라엘 사회는 거대한 공포와 충격에 휩싸였고, 곧이어 무자비한 군사 작전으로 응징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다시 점령하고, 무장 세력의 은신처는 물론 민간인 거주지까지 초토화했습니다.

약 5년간 이어진 이 눈물겨운 진압과 테러의 악순환 속에서 팔레스타인인 3,000여 명, 이스라엘인 1,000여 명 등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로 인해 양측 온건파의 입지는 완전히 사라졌고, 서로에 대한 증오심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2. 분리와 고립의 상징: '거대한 분리장벽'의 등장

자살폭탄 테러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정부는 2002년부터 극단적인 안보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이스라엘 영토 사이에 거대한 '분리장벽(Separation Barrier)'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장벽을 '테러리스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안보 방벽'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장벽이 세워진 이후 이스라엘 내부의 자살폭탄 테러는 90% 이상 급감했습니다. 그러나 이 장벽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에 가져온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 감옥이 된 서안지구: 장벽의 높이는 최고 8미터에 달하며,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 콘크리트 벽, 감시탑, 콘크리트 참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베를린 장벽보다 높은 수준입니다.

  • 영토 난도질과 일상의 파괴: 더 큰 문제는 장벽이 UN이 정한 합법적 경계선(그린라인)을 넘어 팔레스타인 영토 안쪽을 파고들며 건설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팔레스타인 마을이 고립되었고,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자식 같은 올리브 농장을 빼앗겼습니다. 학교나 병원, 직장에 가기 위해 매일 이스라엘 군의 삼엄한 체크포인트(검문소)에서 몇 시간씩 굴욕적인 조사를 받아야 하는 비인간적인 일상이 고착화되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 장벽이 국제법 위반이며 철거되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이스라엘은 이를 묵살했습니다.

3. 야세르 아라파트의 죽음과 한 시대의 종언

제2차 인티파다의 비극이 한창이던 2004년 11월,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고독한 지도자였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이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사망 원인을 두고 이스라엘에 의한 독살설 등 수많은 음모론이 제기될 만큼 그의 죽음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아라파트의 사망은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온건 성향의 마무드 아바스(Mahmoud Abbas)가 자치정부 의장으로 취임했지만, 이미 점령지 내부에서 무능하고 부패한 자치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의 봉쇄에 맞서 복지 사업과 무장 투쟁을 병행하던 하마스의 인기는 날로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결론: 장벽의 시대가 남긴 그림자

2005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공식적으로 휴전에 합의하며 제2차 인티파다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안보를 이유로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시키고 군대를 철수시켰지만, 그것은 평화가 아닌 더 거대한 고립의 시작이었습니다.

제2차 인티파다와 분리장벽은 양측의 마음속에도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세워버렸습니다. 대화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은 완전히 파묻혔고, 상대를 절멸시켜야 할 괴물로 보는 극단주의가 양측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음 13편에서는 아라파트 사후 팔레스타인 내부의 권력 지형 변화와, 오늘날 중동의 화약고가 된 '가자지구의 하마스 집권과 이스라엘의 잔인한 전면 봉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