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파국으로 치닫는 팔레스타인과 UN의 개입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 전역을 뒤흔든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참상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전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고, 유대인들에게 그들만의 안전한 국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여론이 국제사회에서 급격히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팔레스타인 현지에서는 유대인 무장 단체의 대영 테러와 아랍인들의 저항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이 지역을 통제할 여력이 없던 영국은 1947년 2월,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새로 출범한 UN(국제연합)에 떠넘기겠다고 선언합니다. 공을 넘겨받은 UN은 인류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1. 1947년 UN 결의안 제181호: 영토 분할안의 명과 암
UN은 현지 조사를 거쳐 1947년 11월 29일, 총회에서 찬성 33표, 반대 13표, 기권 10표로 팔레스타인 땅을 나누는 ‘UN 결의안 제181호(팔레스타인 분할안)’를 통과시켰습니다. 하나의 땅을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로 쪼개어 각각 독립시키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할안은 인구 비례와 토지 소유 현황을 고려할 때 심각한 불균형을 안고 있었습니다.
| 구분 | 유대인 (이스라엘 측) | 아랍인 (팔레스타인 측) |
| 당시 인구 비율 | 전체 인구의 약 33% | 전체 인구의 약 67% |
| 실제 토지 소유 | 전체 영토의 약 6~7% | 전체 영토의 대부분 소유 |
| UN 분할안 영토 배정 | 전체 영토의 56.5% 배정 | 전체 영토의 43.5% 배정 |
| 특이 사항 | 비옥한 해안가, 네게브 사막 포함 | 척박한 산악 지대 중심 배정 |
예루살렘의 지위: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사회 신탁통치 지역(Corpus Separatum)'**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 수용과 거부: 엇갈린 두 민족의 운명
이 결의안을 받아든 두 민족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유대인 측 (수용): 자신들이 실제로 소유한 땅보다 훨씬 많은 영토를 얻게 되었고, 2,000년 만에 합법적인 국가를 세울 기회였기에 UN 분할안을 즉각 환영하고 수용했습니다.
아랍인 및 주변 아랍국가 측 (거부): 인구도 적고 땅도 적게 가진 외지인(유대인)들에게 더 많고 비옥한 땅을 내어주는 분할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아랍 측은 이를 "원주민의 자결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분할안을 전면 거부했습니다.
UN 분할안이 통과되자마자, 팔레스타인 전역은 영국군이 완전히 철수하기도 전에 이미 양측 주민 간의 격렬한 내전 상태로 돌입했습니다.
3.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 선언과 전쟁의 서막
영국이 예고한 위임통치 종료일은 1948년 5월 14일이었습니다. 영국군의 마지막 부대가 하이파 항구를 통해 철수하던 바로 그날 오후 4시, 유대인 지도자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은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전 세계를 향해 역사적인 선언을 발표합니다.
"유대 민족의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권리와 UN 총회 결의에 의거하여,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함을 선언한다. 그 국가의 이름은 **이스라엘(State of Israel)**이다."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이스라엘을 즉각 합법 국가로 승인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나라가 생겼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평화의 기쁨은 채 몇 시간도 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 바로 다음 날인 5월 15일 새벽, 이스라엘의 탄생을 용납할 수 없었던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 5개 아랍 동맹국 군대가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을 일제히 침공했습니다. 이로써 현대 중동 역사의 거대한 비극이자 첫 번째 전면전인 '제1차 중동전쟁'의 막이 오르게 됩니다.
결론: 미완의 분할이 남긴 유산
1947년 UN 분할안은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고안된 국제사회의 해법이었지만, 현지 주민들의 정서를 무시한 일방적인 선긋기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분할안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대신, 합법적인 전쟁의 명분을 제공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1948년 5월 14일은 기적과 같은 '독립기념일'이지만, 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게 되는 '대재앙(나크바, Nakba)'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다음 6편에서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제1차 중동전쟁과 팔레스타인 난민의 비극'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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